1. 웃음 속 긴장감
'엑시트'는 재난 영화를 표방하면서도 이례적으로 가볍고 유쾌하다. 대부분 재난 영화가 무겁고 절망적인 분위기로 시작해 긴장과 불안을 조성하는 것과 달리, '엑시트'는 유쾌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재난의 긴박함을 잃지 않는다. 영화는 사회생활에 실패하고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던 청년 용남(조정석 분)을 중심으로 시작된다. 그는 대학교 산악부 시절 쌓은 클라이밍 실력 외에는 내세울 것도, 희망도 없는 인물이다. 그런 용남이 온 가족이 모인 어머니의 칠순 잔칫날, 우연히 시작된 대규모 유독가스 재난 속에서 자신의 생존 본능과 과거의 열정을 되찾게 된다. 이 설정은 재난이라는 거대한 위기와 개인적인 성장이라는 테마를 절묘하게 결합한다. '엑시트'가 특별한 이유는 이 과정이 억지스럽거나 과장되지 않고 매우 자연스럽게 그려진다는 점이다. 영화는 초반부부터 용남의 찌질하고 우울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는 실패를 부끄러워하고,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자신을 자책한다. 그러나 막상 생존을 위해 행동해야 할 때, 용남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과감하게 움직인다. 과거 산악부 시절의 열정이 몸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은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진 가능성과 성장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평소에는 쓸모없어 보이던 능력이 위기의 순간 빛을 발하는 것, 그리고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용남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짜릿한 대리만족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한다. 게다가 영화는 재난 상황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조정석 특유의 능청스럽고 인간적인 연기는 극의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긴장감을 유지한다. 재난 영화 특유의 숨막힘과 웃음이라는 상반된 요소를 동시에 잡아낸 '엑시트'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관객은 웃으며 영화를 보다가도, 어느 순간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위기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지게 되는 것이다.
2. 공감의 힘
'엑시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캐릭터들에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다. 슈퍼히어로 같은 존재는 없다. 용남은 물론이고, 동아리 선배였던 의주(임윤아 분) 또한 그렇다. 이들은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장비나 도움을 받지도 않는다. 오직 자신의 몸과 의지로, 고층 건물과 도시를 헤쳐나간다. 이들의 고군분투는 그래서 더욱 절박하고 공감된다. 특히 용남은 요즘 청년 세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학벌도 나쁘지 않고, 젊고 건강하지만, 사회는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취업에 실패하고, 가족 모임에서는 어색한 존재가 되고, 사랑했던 사람에게조차 떳떳하지 못하다. 그는 어쩌면 많은 청년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감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는 용남을 동정하지 않는다. 그는 주어진 상황을 한탄하지 않고, 스스로 탈출구를 찾아 나선다. 이 점에서 '엑시트'는 단순한 희망고문을 넘어, 진짜 '액션'을 통한 자존감 회복을 이야기한다. 의주 역시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녀는 예쁘고 똑똑하지만, 단순히 용남의 조력자로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때로는 용남보다 더 침착하고 용기 있게 행동한다. 특히 두 사람이 서로를 의지하고, 때로는 밀어주고 끌어주는 장면들은 뻔한 로맨스로 흐르지 않고, 동등한 파트너십을 보여준다. 이는 남녀 주인공이 함께 위기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통해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또한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 캐릭터들 역시 인상적이다.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 엄마(고두심 분), 엄격한 아버지(박인환 분), 툭하면 핀잔을 주는 형제들. 모두 현실에 있을 법한 가족이다. 하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이들은 하나가 되어 서로를 걱정하고 응원한다. 어쩌면 '엑시트'가 그리고자 한 진짜 탈출구는 건물 밖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믿음과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재난극을 가장한 가족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들이 있었기에, '엑시트'는 단순한 오락영화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까지 울림을 전하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3. 희망을 향한 질주
'엑시트'는 끝까지 관객을 숨가쁘게 몰아붙인다. 건물 벽을 오르고, 드론에 매달리고, 뛰고 또 뛰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단순한 액션을 넘어선다. 그것은 희망을 향한 질주다. 가스에 뒤덮인 도심 한복판에서, 용남과 의주는 숨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리고 그 모습은 마치 무너져가는 현실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려는 현대인의 처절한 몸부림처럼 다가온다. 영화는 위기의 순간에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용남이 뛰면서 지르는 비명, 의주와의 티격태격, 우스꽝스러운 실수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항상 땀과 눈물이 있다. 그래서 관객은 웃으면서도, 그 속에 담긴 절박함을 결코 잊지 않는다. '엑시트'는 우리 모두가 가진 두려움과 용기를 동시에 보여준다. 실패한 청년, 소외된 가족, 인정받지 못하는 인간. 그런 보통 사람들이 위기의 순간 빛을 발하며, 결국 자기 자신을 구해낸다. 그리고 영화는 조용히 속삭인다. "너도 할 수 있다"고. 마지막 장면, 모두가 무사히 구조되고 난 후 용남이 가족과 함께 웃으며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은 이 영화의 백미다. 그것은 단순한 생존의 기쁨이 아니다.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 자신에 대한 자긍심,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따뜻한 연대감의 눈물이다. '엑시트'는 웃음을 주면서도,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상기시킨다.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포기하지 않는 한 탈출구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믿음. 이 영화는 단순한 액션이나 오락을 넘어,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응원하는 작품이다. 웃고, 울고, 박수를 치게 만드는 영화 '엑시트'. 그것은 우리 모두의 인생에도 분명 존재하는 작지만 소중한 '탈출구'를 기억하게 해준다.